mymoonshine 2018. 12. 28. 14:18

관찰자 38

 

 


 

- 해리포터 시리무 팬픽입니다. bl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구불구불한 검은 머리카락과 깎아 놓은 듯한 이목구비의 벨라트릭스는 블랙 가의 핏줄답게 그야말로 절세미녀였다. 그러나 광기 어린 눈동자를 보면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나오다가 목구멍에서 얼어붙을 정도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입술과는 달리 무서운 눈동자에서는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만한 자세로 여유를 부리던 리타 스키터조차 벨라트릭스의 등장에 긴장한 듯 표정이 굳었다. 보조와 세 소년은 조심스럽게 두어 발짝 물러나고 스키터는 재빨리 벨라트릭스 앞으로 다가갔다.


"레스트레인지 부인, 오랜만이네요."


벨라트릭스의 입술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스키터를 바라보는 눈초리는 매서웠다. 상대를 품평이라도 하듯 무거워 보일 정도로 길고 빽빽한 속눈썹을 천천히 올렸다 내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스키터 기.자.님."


노골적으로 비꼬는 어투에 홀의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목을 큼큼 다듬은 스키터가 긴장한 표정을 다시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로 덮었다.


"지난번 기사 때문에 아직 마음이 상하신 것 같군요. 엄밀히 말하면 그건 부인의 시동생 라바스탄 씨에 대한 소문을 쓴 거지  남편 로돌푸스 씨에 대해 쓴 게 아니니 이제 그만 기분 푸시죠. 오늘은 당신에게 중요한 날이기도 하고요. 레스트레인지 가문에서 프랑스에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 이 약혼을 성사시키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던데요." 


턱을 약간 치켜든 채 스키터를 내려다보는 벨라트릭스의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약혼에 공을 들인 건 엄밀히 말하자면 레스트레인지 가문이 아니라 나예요. 그리고 지난번 기사는 글쎄, 난 그게 라바스탄이 아니라 내 남편 기사로 읽히던데. 글을 쓴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니 당황스럽군요.

뭐랬더라.. 녹턴앨리 서쪽 유흥가에 혈기왕성한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의 지팡이를 만지고 싶을 때 가는 명소가 있는데, 거기서 놀랍게도 아주 유명한 부인을 둔 명문가의 아들을 볼 수 있다고 했죠. 결혼 전 성에 걸맞게 새까만 머리를 가진 부인인데, 남편이 그런 곳에 나타난 걸 알면 머리가 아니라 눈앞이 까매질 거라고 써 있었죠, 아마? 

아직 아이가 없어 다들 궁금해 하는데 그 이유를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고.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니고선 누구 얘긴지 다 알텐데 정작 대단한 기사를 쓴 리타 스키터 기자님만 아니라시니 놀랍네요." 


말을 계속할수록 표독스러워지는 벨라트릭스의 목소리에 기가 눌릴 만도 했건만 스키터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인께서도 아시겠지만.. 기사가 나갈 정도면 이미 구설에 오른 일이라고 보셔야 해요. 최근 몇 달 동안 로돌푸스 씨와 라바스탄 씨를 그 '명소'에서 직접 만난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제가 직접 인터뷰한 사람도 다섯 손가락은 넘죠. 심지어 순혈가 노부인들의 티타임에서도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답니다.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시원하게 기사를 써서 소문이란 놈의 머리채를 움켜쥐는 편이 유리하죠. 부인께서 적당한 방향을 제시해주시면 제가 소문의 머리를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지 정할 수 있고요. 결론적으로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장담하죠."


뻔뻔한 대답에 벨라트릭스가 분노를 터뜨릴 거라 생각하며 제임스는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뜻밖에도 짧지만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벨라트릭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자신감 하나는 알아줘야겠군요. 하긴 간이 남달리 크니 그런 기사를 쓰고도 겁 없이 다니고 있겠죠. 좋아요, 로돌푸스 일 따윈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안 그래도 당신이 도착하면 발부르가 이모에게 데려갈 생각이었으니 따라오도록 해요. 오늘 약혼식 기사는 아주 신중하게 쓰는 게 당신 신상에 좋을테니 미리 이모를 만나 뵈어야 해요."


발부르가 블랙을 만난다는 말에 스키터의 눈이 반짝 빛났다. 허공에 떠 있던 수첩과 펜을 빠르게 집어든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서 있는 보조를 향해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제임스가 얼른 입을 열었다.


"저희도 따라가나요?"


그제야 낯선 사람들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벨라트릭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셋을 훑어보았다. 스키터가 재빨리 설명에 들어갔다.


"오, 이 청년들은 제 보조로 데리고 온 겁니다. 오늘 약혼식이 워낙 중요한 행사라 전 중요한 분들을 인터뷰하고 제 보조들은 다른 하객들이나 소소한 기삿거리를 취재할 거니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희는 일단 여기서 대기하다 하객들이 오면 취재하도록 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벨라트릭스가 세 소년을 향해 말했다.


"아니, 잠깐. 아까 로랑 양이 프랑스 기자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며 방에서 기자들을 다 쫓아냈다던데.. 그럼 이 셋을 지금 로랑 양에게 보내도록 하죠. 약혼식을 시작하면 신부와 따로 인터뷰할 시간이 없을테니까. 크리처!"


아주 작은 딱 소리와 함께 엄숙한 표정의 집요정이 나타났다. 발부르가의 수족 노릇을 한다며 시리우스가 질색하는 집요정, 크리처였다. 


"크리처, 여기 셋을 로랑 양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레스트레인지 부인."


크리처는 벨라트릭스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힌 후 세 소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쩍 마른 얼굴에서 푸른 눈동자가 번쩍거렸다. 어떻게 대접해야 할 사람들인지 파악하는 듯했다. 평가를 끝낸 크리처가 말없이 돌아서서 계단으로 향하자 세 소년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제임스는 입속으로 투덜거렸다.


"벨라트릭스한텐 굽신거리더니... 그 집안에 그 집요정이구먼."


나란히 가던 피터가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상상하던 딱 그 모습이야."


원래 발이 빠른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크리처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크리처의 발이 계단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보고 멈췄다.  


"도련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방금 전까지 쌀쌀맞게 앞서 가던 크리처의 입에서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뒤따르던 세 소년은 당황해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에 어울리는 우아한 초록색 예복을 입은 레귤러스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필요한 분들을 모시고 왔구나.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겠니? 이 분들과 이야기할 게 있어서."


사랑하는 도련님의 말에 크리처는 고개를 깊이 조아린 후 사라졌다. 레귤러스는 계단 위아래를 살핀 후 셋을 데리고 2층 계단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셋의 얼굴을 둘러 본 레귤러스가 고개를 살짝 젓고 물었다.


"누가 누구지?"


"금발이 포터, 빨간 머리가 페티그루, 검은 머리가 루핀."


리무스가 대답했다.


"전혀 못 알아보게 잘 꾸미고 왔군. 그래도 머리색이 다르니 구분하긴 편하네. 좋아. 그럼 한 사람은 크리처를 따라 로랑에게 가도록 해. 지금 프랑스 기자들을 다 쫓아내서 로랑만 남아 있으니까 약혼식 때 어떻게 할지 다시 한 번 입을 맞춰놓도록 해. 그리고 나머지 둘은 날 따라 와. 형에게 갈 거니까. 포터의 망토가 필요할 거야. 문 앞을 레스트레인지 형제가 지키고 있으니 몸을 숨겨야 해."


세 소년의 눈이 커졌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피터가 로랑에게 가고, 나랑 리무스가 시리우스에게 갈게. 피터는 로랑과 확실히 계획을 점검하고, 리무스와 나는 어떻게든 시리우스의 정신을 돌려놓고 가능하면 둘 중 하나가 시리우스를 데리고 먼저 나가든지..."


레귤러스가 말을 잘랐다.


"일단 뒷일은 형을 보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거야. 생각보다 더 깨우기 어려운 상황일테니. 그럼 움직이자. 크리처!"


크리처가 순식간에 그들 앞에 나타났다. 레귤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 분을 로랑 양에게 모셔가도록 해. 다른 두 분은 나와 갈 거야."


이번에도 크리처는 사랑하는 도련님의 명령을 즉각 수행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제임스와 리무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피터는 크리처를 따라 방을 나갔다.


"자, 이제 우리도 가자. 망토를 쓰고 내 뒤를 천천히 따라와. 형은 3층 끝방에 있어."


제임스가 바지 주머니에 숨겨 온 투명망토를 꺼내 리무스와 자신을 휙 덮었다. 둘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레귤러스의 뒤를 쫓았다. 3층으로 올라간 레귤러스는 왼쪽 복도로 걸어갔다.

복도 끝에는 긴 흑발을 나부끼며 지팡이를 치켜든 채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남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레귤러스가 중얼거렸다.


"시그너스."


그림 속의 남자가 지팡이를 내리자 벽이 문처럼 안쪽으로 열렸다. 제임스와 리무스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레귤러스는 뒤를 살피는 척 하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벽이 닫히고 다시 레귤러스가 앞장 서서 안으로 들어가자 짙은 갈색문과 의자로 그 앞을 가로막고 앉은 두 남자가 보였다.

둘 다 창백한 피부에 검고 축축해 보이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커다란 코와 검은 눈동자, 눈 밑의 짙은 그늘까지 찍어낸 것처럼 닮은 두 사람이 바로 로돌푸스와 라바스탄 레스트레인지 형제였다. 둘은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투덜대고 있었다.


"제기랄, 내가 왜 말썽꾼 녀석 방문이나 지키고 있어야 해? 형이야 형수한테 지은 죄가 있다지만..."


"닥쳐, 라바스탄. 내가 애초에 그 가게에 간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내가 목줄이라도 채워서 끌고 간 것처럼 구네. 같이 가자고 난리쳐 놓고서 이제 와서 발뺌하지 말라구."


"시끄러워. 어쨌든 오늘 약혼식이 잘 끝나야 벨라 기분이 좋아질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걔 성질에 너랑 나에게 크루시오를 날리지 않은 게 기적이지."


"형수가 무서우면 형은 앞으로 거기 가지 마. 환상적인 지팡이들은 나 혼자 느껴도 되니까. 흐흐흐흣. 저번에 거기서 주무른 탱탱한 애를 생각하면..."


라바스탄의 입에서 더 노골적인 말이 나오려는 참에 레귤러스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다 힘들면 식당에서 한 잔 하고 오세요. 여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레귤러스를 본 라바스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럴까? 하긴 네 형인데 우리가 버티고 앉아 있는 게 우습지. 갑시다, 형님."


자리를 뜨고 싶은 기색이 완연했지만 부인이 무서웠는지 로돌푸스는 잠시 망설였다. 


"분명 이따 벨라가 올텐데...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엄청 화내지 않을까?"


레귤러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지키고 있는 게 마음 편해서 두 분과 교대했다고 할게요. 형님들이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비워야 하면 크리처를 통해 연락드릴테니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차분하지만 왠지 모를 위엄이 느껴지는 레귤러스의 말에 로돌푸스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라도 빨리 답답한 곳을 빠져 나가고 싶었던 두 형제는 벽 너머로 사라졌다. 투명 망토가 서 있을 만한 곳을 바라보며 레귤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됐어. 문은 잠겨 있지 않으니까 얼른 들어가."


망토를 벗은 제임스와 리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색에 가까운 갈색 문은 아주 두껍고 음침해 보였다. 깊은 숨을 들이쉰 제임스가 문 손잡이를 돌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서고, 뒤이어 들어간 리무스가 문을 닫았다.

방은 넓고 무척 어두웠다. 한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서 촛불 두 개만이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눈으로 방을 더듬자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 커튼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얼핏 보였다.


"시리우스?"


리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제임스와 리무스는 천천히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제임스가 지팡이를 들어 불을 켰다. 작지만 눈부신 빛이 두꺼운 커튼 틈으로 들어가자 그 안의 형체가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 조각 같은 이목구비. 시리우스였다. 


"시리우스!"


친구의 얼굴을 본 제임스는 단숨에 시리우스를 끌어 안았다. 하지만 감격의 포옹은 길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손이 뻗어나와 그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참, 우리 모습이 바뀌어서 못 알아보겠구나! 제임스는 얼른 상황을 설명하려 시리우스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익숙한 검은 눈동자에 담긴 공허한 표정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시리우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리우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시리우스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리무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네가...그러니까 네 자신이 누군지 혹시 알고 있어?"


공허한 눈동자가 리무스 쪽으로 돌아갔다. 한참 리무스를 살피던 시리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 중이야.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말에 제임스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두 소년이 할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일어선 시리우스가 갑자기 리무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정말 오래 걸리네요. 결말은 대충 나와 있는데 가는 길이 꼬입니다ㅠㅠ 그래도 찾아주시는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