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무] 관찰자 11
관찰자 11
- 해리포터 시리무 팬픽입니다. bl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하지 않아요.
"친구 하나는 정말 잘 뒀어. 인복이 있어."
아침식사가 시작되기도 전, 어깨가 축 처져서 병동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던 제임스 포터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란히 걷고 있던 조각 같은 미모의 검은 머리 소년이 하얀 손수건으로 코를 가린 채 대꾸했다.
"나 같은 친구랑 사귀는 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축복은 아니거든."
"웜테일 방귀 같은 소리하지마. 나 말고 네가 친구를 잘 뒀다는 거야. 지금 누구 때문에 내가 이 시각에 병동 나들이 중인지 잊었어?"
시리우스가 부어오른 코로 용케 코웃음을 치고는 통증으로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네가 진정한 친구라면 이미 몇 시간 전에 일어났어야지. 절친은 코가 깨져서 들어왔는데 코나 드르렁드르렁 골아대고... 나도 코 골면서 자고 싶었다구!"
"그러게 얌전히 숨어 있다 내려올 것이지 펜위크는 왜 쫓아가서 건드렸어? 한바탕 붙을 생각이었으면 미리 말했어야지."
"망할 자식이 계단 내려와서 갑자기 무니를 덮치는데 가만히 놔둬? 무니가 그만하라고 밀어내는데 계속 들이대잖아. 무니가 부드럽게 말할 땐 들은 척도 안하더니 화난 티를 내니까 그제서야 물러나더라. 그 자식이 1초만 더 버텼으면 투명망토고 뭐고 벗어던지고 뛰어나가서 후려갈겼을 거야."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래번클로 휴게실 입구까지 펜위크 따라가서 때리기였어? 네가 질투에 눈이 멀어 머리통이 완전히 굳었구나. 우린 마루더즈라구! 좀 더 수준 높은 작전을 세웠어야지."
"다른 놈이 에반스한테 지분거리는 꼴을 직접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지 그래, 포터. 나한테 그런 걸로 잔소리할 입장이 아닐텐데."
"호그와트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놈이 아니고선 이 제임스님 앞에서 릴리한테 들이댈 인간은 없을걸. 어쨌거나 무니가 알면 단단히 화낼텐데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펜위크랑 육탄전을 벌인 거야?"
시리우스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니는 모를거야. 난 얘기 안할 거고, 펜위크는 못할테니까."
뜻밖의 대답에 제임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따라와서 먼저 달려들었다고 얘기하는 게 펜위크에게 유리하지 않나?"
"안 그래도 무니한테 말하겠다고 씩씩대길래 그러라고 했지. 대신 내가 왜 주먹을 휘둘렀는지 이유를 무니가 알면 너한테도 좋을 게 없을 거라고 했어. 리무스에게 좋아한다고, 너랑 헤어지고 나랑 만나자고 대놓고 고백할 생각이니 나랑 공개적으로 사랑의 라이벌이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지. 그랬더니 펜위크 얼굴이 노래졌다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는데 우스워 죽을 뻔 했다니까."
코를 싸쥐고 낮은 소리로 낄낄대는 시리우스를 보며 제임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대단한 놈이야, 넌. 결국 리무스 좋아한단 얘기를 당사자가 아니라 그 남자친구한테 먼저 했구만. 사랑고백을 협박용으로 쓰다니......"
"어차피 펜위크도 눈치채고 있는 사실을 말로 확인시켜준 것 뿐이야. 다 왔으니 동상마냥 서 있지 말고 노크 좀 해봐. 코 쑤셔 죽겠어."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고 발로는 시리우스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제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폼프리 부인이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긴 한숨을 뿜어냈다.
"낮에 봐도 반갑지 않은데 해 뜨기도 전에 보는 건 더더욱 안 반갑구나. 일단 들어오렴."
시리우스가 손수건을 내리며 폼프리 부인에게 윙크를 보냈다.
"어여쁜 폼피, 제가 코 다쳐서 왔단 얘기, 리무스한텐 하지 마세요. 물론 환자의 비밀을 잘 지키는 훌륭한 간호......."
"닥치렴, 블랙군. 네 얼굴 한복판에 달린 퉁퉁 불은 호박같은 코부터 가라앉히고 떠드는 게 좋겠구나. 포터군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지 않으니 먼저 방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부디 눈은 좀 더 크게 뜨고 가렴. 그렇게 풀린 눈으로 다니다간 블랙군 꼴이 날 거야."
제임스는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려는 시리우스에게 혀를 낼름 내밀고서 폼프리 부인을 향해 미소를 던졌다.
"환자를 무사히 데려왔으니 전 상냥한 폼프리 부인의 현명한 충고에 따라 눈을 크게 뜨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우스, 얌전히 치료받고 와. 연회장에서 보자구."
병동 문을 나선 제임스는 뻐근한 목을 좌우로 돌리며 길게 하품을 했다.
"아후우우우우, 졸려. 패드풋, 이 성가신 자식. 내가 무니한테 확 불어버리고 싶네. 하여간 지금은 빨랑 가서 자야지."
포근한 침대로 돌아가기 위해 제임스가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도는 순간 반대편에서 역시 빠르게 걸어오던 사람이 제임스를 보고 급히 멈춰섰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살짝 일그러졌다.
"포터."
"펜위크."
펜위크의 검게 멍든 눈두덩이와 부어오른 입술을 보자 제임스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꼴을 만들어놓고 무니가 모르게 넘어가겠다니, 패드풋 이 대책 없는 자식......
"병동 쪽에서 오는 걸 보니 거기 누가 있는지 알겠네. 블랙한테 다음엔 가볍게 봐주지 않을 거라고 전해."
"네가 더 치료가 급해 보이는데. 어차피 병동 가는 길인 것 같은데 직접 얘기하지 그래?"
펜위크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블랙이랑 같이 치료받고 싶지 않아. 기숙사로 돌아가겠어. 참, 리무스에게 오늘 아침은 같이 못 먹을 것 같다고 전해줘."
"내일부턴 같이 먹겠다는 뜻이야?"
"리무스가 래번클로 테이블로 와서 식사하기로 했어. 너희 테이블엔 달갑지 않은 인물이 있어서 말이지. 친구의 행복을 유치한 방식으로 방해하는. 난 어디서 식사하건 상관없지만 리무스를 위해 우리 테이블에서 먹을 생각이야. 그럼 나중에 보자."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펜위크는 몸을 휙 돌려 빠르게 걸어가버렸다. 잠이 달아나버린 제임스는 안경을 벗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질투에 눈이 먼 놈들 덕분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릴리에게 위로해 달라고 졸라야지."
- 12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