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무] 관찰자 21
관찰자 21
- 해리포터 시리무 팬픽입니다. bl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하지 않아요.
허리를 꼿꼿이 편 펜위크 씨는 리무스에게 따라오라는 몸짓을 한 후 허니듀크 뒤편으로 먼저 걸어갔다. 정신을 차린 제임스는 미동 없이 서 있는 리무스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렸다. 놀라서 커진 눈동자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니, 무니. 정신 차리고 내 말 들어. 저 사람... 지금 자기가 늑대인간 등록부에 있다는 거지? 무슨 소릴하건 네 비밀을 펜위크한테 밝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야 해. 무슨 소린지 알겠어?"
리무스의 아랫입술이 덜덜 떨리면서 벌어졌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금갈색 눈동자가 제임스의 눈에서 어깨 너머로 옮겨갔다. 시리우스와 피터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둘의 얼굴도 굳었다. 펜위크 씨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피터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 사람은 생긴 거 보니까 펜위크랑 닮았던데 혹시 걔네 아버지야?"
제임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무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시리우스가 물었다.
"무니한테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던데 왜 따로 불러내는 거지? 아들 남자친구랑 은밀히 나눌 얘기라도 있는 거야?"
"저 사람, 늑대인간 등록부에 있대. 무니에 대해 알고 있어."
제임스의 대답에 시리우스와 피터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깬 건 리무스였다.
"일단... 가서 얘기 들어보고 올게. 기다리고 있으시니까... 내 걱정 말고 이따 학교에서 봐.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리무스는 펜위크 씨가 간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 버렸다. 입술을 꽉 깨물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리우스가 제임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혹시 투명망토 가져왔으면 빌려줘."
"가져오긴 했지만 지금 따라가서 어쩔 셈인데?"
"아까 저 사람 무니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싶었어. 절대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없는 눈빛이었어. 무니에 대해 알고 있다면... 자기 아들과 헤어지게 만들 생각으로 협박할 가능성이 높아."
"나도 그 생각은 들어. 하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어?"
"그 자식이랑 헤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냐. 저 사람이 그 과정에서 무니에게 어떤 말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 그게 걱정인 거야. 얼른 망토 줘봐."
"패드풋 너...제발 부탁이니... 허튼 짓 안하겠다고 약속해. 열받는다고 멱살 잡으러 뛰쳐나가면 안된다. 일을 완전히 그르칠 수도 있어. 알겠지?"
주위를 살핀 제임스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망토를 꺼내 시리우스에게 건넸다. 망토를 쥐고 허니듀크 뒤편으로 사라지는 친구를 향해 제임스는 걱정스런 시선을 던졌다. 피터도 불안한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이지? 불쌍한 무니... 펜위크가 요새 하는 행동 봐선 별 이유 없이 헤어지자고 하면 난리날 것 같은데..."
"계속 사귈 수 없는 건 분명해. 아까 그 분위기론... 적어도 자기 아들이랑 사귀는 늑대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인 건 확실해 보여."
펜위크 씨의 눈동자에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들이 제임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늑대인간 등록부는 일부 늑대인간들의 반발과 거친 행동을 계속 경험해야 하고, 등록을 거부하는 늑대인간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마법부 내에서 가장 인기 없는 부서로 알려져 있었다. 언젠가 리무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록부에 이름을 올리러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을씨년스런 보름날 밤 그레이백에게 물린 다섯 살 소년은 뭘 하는 곳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거대한 건물의 긴 복도를 걸어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활기 찬 거리의 소음 속에서 제임스는 긴 한숨을 뿜어냈다.
"포터, 페티그루! 리무스 어디 있는지 알아?"
언제 온 건지 펜위크가 커다란 갈색봉투를 한쪽 팔로 껴안고 눈앞에 서 있었다. 피터가 대답했다.
"리무스는 너희 아버지가 불러서 따라갔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무슨 얘길 하려고 자리까지 옮기신 거지? 근데... 블랙도 같이 간 거야?"
추궁하는 듯한 말투에 화가 치민 제임스는 차갑게 내뱉었다.
"어디에 가건 본인 마음이지.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내가 왜 상관하는지 너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나도 쓸데없는 일에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블랙이 자초한 거야."
검은 눈동자와 파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부딪혔다. 제임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시리우스가 어디 가건 그건 걔 자유지.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리무스가 네 아버지랑 함께 있건, 시리우스랑 함께 있건 그건 본인 자유야. 남자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고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소중한 충고 새겨듣지. 그런데... 포터 네가 남의 연애사에 참견하기엔 너무 경험부족 아닌가?"
이를 부득 갈며 펜위크에게 다가서는 제임스의 팔을 피터가 붙잡았다.
"여기서 싸우면 학교에서보다 일이 더 커질 거야. 그냥 상대하지 말자."
"징계 따윈 상관없어. 무니 생각해서 지금은 참는다. 하지만 계속 참아줄 순 없으니 적당히 까부는 게 좋을 거야, 펜위크. "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릴 정도로 둘은 사납게 서로를 노려봤다. 시리우스건 리무스건 펜위크 씨건 아무나 빨리 돌아오라고 피터는 마음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가장 달갑지 않은 패거리였다.
"호오, 이건 내가 예상했던 그림과는 다른데? 엉뚱한 커플이 사랑싸움 중이구만."
비아냥거리는 가느다란 목소리 뒤로 여럿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스네이프와 에이버리, 로지어, 놋 등이 팔짱을 끼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건들거리고 있었고,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레귤러스 블랙이 맨뒤에 몇 발짝 떨어진 채 서 있었다. 제임스와 부딪히게 가만히 뒀다간 큰일이 터질 것 같아 피터가 얼른 나섰다.
"뱀장수가 뱀통을 열어놓고 깜박한 모양이지? 뱀떼가 길을 돌아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다시 잡혀가기 전에 썩 꺼지지 그래?"
로지어가 비열한 웃음을 띠며 피터에게 다가가는 걸 스네이프가 막아섰다.
"주인님이 사랑싸움 중이라 똘마니가 바쁘네. 그래도 너무 나대지 않는 게 좋아. 포터가 항상 네 토실토실한 궁둥이를 지켜주진 않을테니까."
노골적인 조롱에 벌겋게 달아오른 피터가 망토에서 지팡이를 꺼내 스네이프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 슬리데린 패거리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가뜩이나 느끼한 인상의 로지어가 이를 드러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포터의 애완동물인 줄만 알았더니 제법 강단이 있는데. 어때, 그 엉덩이 내가 맡아줄까? 난 풍만한 것도 취향이야."
인내심이 바닥난 제임스의 손에서 지팡이가 올라갔다. 슬리데린 패거리들의 손에도 지팡이가 들렸다. 누구든 한 마디만 더 하면 길 한복판에서 싸움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두 진영 사이로 재빨리 걸어들어왔다.
"이런... 호그스미드는 싸움터가 아니야. 학생들, 양쪽 다 당장 지팡이 집어넣고 물러서도록 해. 난 마법부 소속의 앤드류 펜위크다. 물러서지 않으면 호그와트는 물론 마법부 교육부서로 즉각 연락해 조치하겠다. 여기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상당한 불편을 끼치게 될 거야. 알겠나?"
펜위크 씨의 위압적인 몸집과 웅웅대는 낮은 목소리가 꽤 효과적이었는지 혹은 마법부에 알린다는 위협 때문이었는지 슬리데린 패거리들은 지팡이를 주머니에 넣고 서서히 물러섰다. 뒤돌아서기 직전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올리고 펜위크를 응시했다.
"가족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기 좋은 날이군. 아는 게 약인지 독인지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잘해보라구."
"지난번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당황한 표정의 펜위크를 비웃듯이 쳐다본 스네이프는 패거리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펜위크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자기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같이 왔을 거라 생각한 리무스가 보이지 않았다.
"리무스는요?"
망토 앞자락을 툭툭 털며 펜위크 씨가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루핀 군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학교로 먼저 가겠다고 하더구나. 쉬어야 할 것 같으니 나중에 보자고 전해달라길래 알겠다고 했지."
"몸이 아프다고요? 그럼 저도 들어가볼게요. 여기 아버지 물건 받으세요."
갈색봉투 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펜위크 씨는 몸을 곧게 펴고 아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루핀 군은 몸이 많이 안 좋다고, 지금은 혼자 쉬고 싶다고 했어. 그럴 땐 쉬게 해주는 게 진정한 배려지. 넌 호그스미드에 있다가 천천히 돌아가도록 하렴."
"하지만... 아까까지 멀쩡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아픈 걸 보면 뭔가 심각한 병일 수도 있잖아요. 그 상태로 혼자 성으로 돌아가는 건 위험해요."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친구가 데려갔으니 걱정할 것 없다. 내 말 명심하고 지금은 루핀 군을 쉬게 놔둬. 그럼 나는 이만 가야겠다."
시리우스의 이름에 순간 굳어버린 아들의 손에서 갈색봉투를 받아든 펜위크 씨는 제임스에게 눈을 돌렸다.
"만나서 반가웠네. 포터군도, 옆에 있는 친구도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해. 학교 밖의 현실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니까. 많은 의미에서 말야.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길 바라네."
말을 마친 펜위크 씨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펜위크는 자기 아버지 쪽은 보지도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여러 가지 일에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제임스는 피터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가자, 친구. 버터맥주 한 잔 하고 학교로 돌아가자."
- 22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