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조만간 그 바닥에 지워지지 않을 역사적 흔적 하나 남겨주고 말겠어. 나이 들수록 고약한 잔머리만 늘어난단 말이지, 슬러그혼은. 그나저나 패드풋은 트로피룸 청소 다 끝냈으려나?"
"거긴 우리가 입학 이후로 워낙 많이 닦아놔서 백년쯤은 안 닦아도 될텐데. 패드풋 운이 좋았어. 정말 맥고나걸이 얼굴 보고 패드풋 편한 데로 빼준 거 아닐까?"
"흥, 웜테일. 왜 이래? 넌 몰라도 이 제임스님의 미모는 패드풋 따위에게 밀리지 않는다구."
"내가 어지간하면 네 편 들겠는데... 시리우스는 호그와트 개교 이래 최고 미남이야. 설립자들이 여기서 유령 모임이라도 열면 저렇게 잘생긴 얼굴은 처음 봤다고 인정할걸."
"쳇. 아침에 패드풋 자식 입가에 침 자국 죽 늘어진 꼴을 다들 봐야되는데. 발냄새는 또 어떻고. 어쨌거나 얼른 가서 씻어야지. 눅눅한 지하실 냄새가 머리털까지 밴 거 같다."
싸늘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제임스와 피터는 발걸음을 재촉해 그리핀도르 휴게실로 향했다. 뚱보여인에게 윙크할 기운도 없어 암호만 겨우 대고 휴게실로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얼굴에 닿았다. 둘은 이제야 살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터가 벽난로 쪽을 가리켰다.
"저기 패드풋이랑 무니다. 역시 패드풋이 우리보다 먼저 끝났네."
"이런 차별대우는 참을 수 없어. 미니에게 내일 강력 항의해야지. 웜테일, 너 먼저 올라가서 씻어라. 난 패드풋이랑 할말이 있어."
피터를 먼저 올려보낸 제임스는 시리우스와 리무스 쪽으로 다가갔다. 벽난로의 온기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자 힘이 한층 더 빠지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제임스는 너무 삶아 늘어진 면발 같은 몸을 긴 의자 끝에 앉은 리무스의 무릎에 던졌다. 그러자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엉덩이로 시리우스의 발이 날아들었다.
"프롱스 이 자식, 뭐하는 짓이야? 곧 그날이라 무니 피곤하다구! 그 육중한 몸뚱아리 당장 치워!"
"잠깐, 시리우스. 나 괜찮으니까 제임스 그만 걷어차. 아무래도 마법약 교실 바닥 닦느라 진이 다 빠진 모양이야."
자세를 바꿔 리무스의 허벅지를 베고 비스듬히 누운 제임스가 걷어차인 엉덩이를 문지르며 시리우스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다.
"의리라곤 멀린의 눈곱만큼도 없는 놈 같으니. 넌 트로피나 슬슬 만지작거리다 왔지만 난 스네이프가 토해놓은 것 같은 지하실 바닥을 이 두 손으로 문지르다 왔다구!"
"그거랑 무니 깔아뭉개는 게 무슨 상관이야? 스킨십이 필요하면 에반스 다리나 베고 누워."
"이 몸 상태로 릴리한테 뺨까지 맞으란 소리야? 그게 시련을 겪고 온 벗에게 절친이란 놈이 할 소리냐?"
시리우스가 대꾸하려는 참에 리무스가 둘의 말다툼을 끊었다.
"자, 자. 둘 다 이제 그만해. 큰소리 낼 시각이 아니야. 벌써 열 시가 넘었어. 피터는 먼저 올라간 거야?"
"먼저 씻으러 갔어. 무니, 나 어깨 아파. 슬러그혼이 몇 년 동안 안한 청소를 우리한테 뒤집어 씌웠다구."
한껏 가엾은 표정을 짓고 안경 너머로 눈을 꿈벅거리는 제임스를 보며 리무스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리무스가 제임스의 어깨를 살살 문지르는 모습에 시리우스는 다시 불만을 드러냈다.
제임스의 머리 아래에서 리무스의 몸이 살짝 굳는 게 느껴졌다. 어깨에 닿은 손이 잠시 멈췄다.
"데이트도 좋지만... 너무 늦게 다니지는 마.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여자 만나는 거 아니야, 무니. 잠깐 일 보러 가는 것 뿐이야."
머리 아래에 놓인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어깨를 문지르는 손이 다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래... 오늘 릴리가 순찰 중이니까 조심해. 아침 일로 기숙사 점수 깎여서 아직 기분 안 좋은 것 같아."
"제임스 망토 두르고 갈게."
"난 빌려준다고 한 적 없는데. 넌 내 섬세한 마음과 엉덩이에 상처를 줬어."
제임스가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치며 일어서서 망토를 가지러 올라가버렸다. 리무스는 말없이 제임스의 어깨를 살살 문지르다 시리우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프롱스, 혹시 로버트랑 시리우스 사이에 무슨 일 있는지 아는 거 있어? 둘이 아무래도 좀... 느낌이 싸하달까... 이상해서..."
"응? 글쎄. 초반에 패드풋이 좀 뻣뻣하게 굴어서 펜위크가 아직 기분이 덜 풀린 거 아닐까 싶은데. 펜위크가 무슨 얘기라도 했어?"
"저녁식사 후에 잠깐 만났는데 시리우스가 요즘 만나는 여자애가 누구냐고 묻더라구. 잘 모르겠지만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별 대답없이 딴 얘기로 넘어갔어. 표정이 영 안 좋아서 왜 그런 걸 묻는지 되물으려다 그만뒀어."
널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 제임스는 흠흠거리며 목 가다듬는 소리만 냈다.
"너 오기 전에 시리우스도 이상한 질문을 했어. 로버트를 진심으로 좋아하냐고."
나른하게 눈을 감고 있던 제임스가 눈을 뜨고 리무스의 턱을 올려다보았다.
"패드풋이?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좋아하니까 만나는 거라고 했지. 그랬더니... 가장 힘든 일이랑 관련해서도 믿을 수 있겠냐고, 기댈 수 있을 것 같냐고 묻더라."
"......그래서?"
긴 한숨을 내쉬며 리무스가 눈을 감았다. 제임스의 어깨를 문지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희 덕분에 난 지금도 정말 운 좋은 사람이지만 아주 조금만 더 욕심을 내서... 너희랑 릴리 외에 내 그... 털 달린 문제를 포함해서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사람이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로버트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존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고. 사귀기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내 정체를 알아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마음 한쪽에서 조금씩 자라난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임스는 친구의 마른 손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얹었다.
"무니, 너 생각보다 펜위크를 좋아하는구나."
리무스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밑에서 봐서는 끄덕이는 건지 도리질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로버트가 좋아. 좋으니까 사귀었지. 로버트처럼 인기 많고 잘난 애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도 놀라웠고. 그치만... 너무 좋아하면 안될 것 같아. 내 욕심처럼 풀릴 리가 없으니까. 너한테 예전에 말한 것처럼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겠지. 내가 끝내자고 하기 전에 로버트가 나한테 질리면... 오히려 고마울 것 같아. 시작부터 거짓말하고 있으니 그것도 너무나 미안하고. 게다가 로버트가 시리우스한테 왜 그렇게 적대적인지도 알 것 같고......"
"펜위크가 시리우스를 싫어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거야?"
긴 한숨이 제임스의 헝클어진 앞머리에 닿았다. 리무스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게이인 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난 작년 연말 즈음에 내가 어떤 남자애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라고 했지. 누구라고 얘기한 적은 없는데 로버트가 눈치로 안 것 같아. 프롱스, 제발 부탁이니 너만 아는 걸로 해줘. 그러니까... 사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시리우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