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조용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금지된 숲에서의 일이 벌어진 후 얼마 안 있어 보름이 다가왔다. 리무스가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날뛸 줄 알았던 늑대는 이상할 정도로 축 처져 있었다. 패드풋이 아무리 놀자고 코를 킁킁대고 얼굴을 핥아도 늑대는 오두막 바닥에 납작 엎드려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프롱스와 웜테일은 (동물이 할 수 있는 한)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
달이 지고 뿌연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자 늑대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얌전히 시간을 보낸 덕에 다친 곳이 거의 없긴 했지만 밤새 두 번에 걸쳐 변신하는 고통은 여전해서 리무스의 얼굴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반쯤 내려앉은 침대에 리무스를 옮겨 눕히고 어깨뼈가 도드라진 마른 몸에 얇은 이불을 덮어주며 소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 피터가 고개를 돌렸다.
"해가 떴으니 곧 폼프리 부인이 올거야."
침대 머리맡에 앉아 리무스의 땀에 젖은 이마를 자기 셔츠 소매로 닦아주던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으로 돌아가자. 아침 먹고 병동으로 가면 면회 가능할 거야. 오늘은 상처도 거의 없으니 오후엔 방으로 돌려보내줄지도 몰라."
침대 밑에 기대어 앉아 있던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폼피 성격상 저녁 전에는 놔주지 않을걸. 무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으니 물약을 열 사발은 들이키고 종일 누워있어야 할 거야."
친구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세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오두막을 나섰다. 얇은 티셔츠에 발목이 드러난 바지만 덜렁 걸치고 나온 제임스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득 다음 보름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게 떠올랐다. 지치고 추운 몸만큼이나 마음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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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역사 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늘어지게 잔 덕에 개운해진 제임스는 점심식사에 앞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먼저 간 시리우스와 피터에게 점심으로 소시지가 나오면 잔뜩 챙겨두라고 부탁해 둔 덕에 여유롭게 볼일을 볼 수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화장실을 나서는데 펜위크가 앞을 막아섰다. 매우 달갑지 않은 얼굴에 제임스는 얼굴을 무섭도록 찌푸렸다.
"뭐야?"
"얘기 좀 해, 포터."
"뭔 얘기? 네 놈이 무니에게 한 짓에 대한 거라면 시간 낭비할 필요없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주먹 마사지 받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마침 내가 큰일을 봐서 가뿐하니 힘이 넘치거든."
"중요한 얘기야. 리무... 루핀에 대해 나쁜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고. 안 믿겠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 잠깐이면 되니까 따라와."
의외의 말에 살짝 당황한 제임스는 잠시 망설이다 펜위크를 따라나섰다. 가까운 빈 교실로 제임스를 데려간 펜위크는 문을 잠그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문까지 외우고서야 입을 열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 지난 방학에 늑대인간 등록부에 이상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어. 호그와트에 있어서는 안될 생물체가 다니고 있으니 늑대인간 등록부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
"뭐? 도대체 어떤 자식이 그런 짓을...아......."
범인이 누구인지 떠오르는 순간 제임스는 이를 부득 갈았다. 동의한다는 의미로 펜위크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뤄볼 때 그런 편지를 보낼 사람은 스네이프 뿐이야. 어떻게 알아챈 건지는 모르지만 너희 무리나 교수들을 제외하고 루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걸로 보이니까."
"넌 그런 편지가 왔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루핀과 헤어지고 다음 주말에 특별 허가를 받아 집에 다녀왔어. 늑대인간 등록부에 편지를 보낸 걸로 봐선 스네이프가 루핀의 입학 절차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은데... 늑대인간이 호그와트에 들어오는 건 등록부 수장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내 아버지가 그 담당자니까... 리무...아니 루핀이 직접 자기가 늑대인간이라는 증거를 보여줬고, 난 곧바로 헤어지자고 하긴 했지만... 아버지에게 확인을 받지 않는 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집에 갔다가 얘기를 듣게 된 거야."
"네 아버지한테 리무스가 늑대인간이라는 확인증이라도 받은 거야?"
냉랭한 제임스의 어조에 펜위크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기 좋게 그을려서 활기차 보이던 얼굴이 꽤 푸석푸석하고 수척해 보였다.
"아버지는 내게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어. 워낙 기밀이라 새어나갔다간 덤블도어와 아버지 모두 곤란해지는 일이기도 하고. 그냥 루핀이 알아서 관계를 정리해주길 바랐을 뿐이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엄청나게 놀라셨어. 이미 알고 묻는 거니까 편지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신 거야. 루핀이 나를 속이고 만난 건 괘씸하지만 호그와트 입학 자체가 여러 사람이 얽힌 일이니만큼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어."
"고마운 마음이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이 안 드네. 리무스의 안위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본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게 조심하란 얘기로 들리는데?"
"아들이 늑대인간과 사귀었다는데 어떤 부모가 좋은 반응을 보일 것 같아? 더구나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늑대인간을 도와주려다 속아서 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어. 그 이후론 업무 외에는 절대 얽히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분이야. 내... 남자친구가 늑대인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행여라도 감염되거나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헤어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하셨지."
더러운 것이라도 입에 문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뱉는 펜위크를 보자 제임스는 뱃속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래번클로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두 손으로 바짓자락을 꽉 움켜쥐어야 했다.
"늑대인간에게 피해 입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 대부분의 늑대인간들은 소수 미치광이들에게 당한 피해자일 뿐이야. 리무스는 다를 것 같아? 걘 다섯 살에 미친 놈한테 물어뜯겼다고! 늑대인간이 되고 싶어서 신청서라도 쓴 줄 알아? 너나 네 아버지 같이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들 때문에 자기가 짓지도 않은 죄의 대가를 평생 뒤집어 쓰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네가 코딱지만큼이나 이해하냐고?"
으르렁거리는 제임스를 향해 펜위크도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 내가 이해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설령 루핀이 늑대인간인 걸 받아들이고 사귄다 해도 우리가 얼마나 갈 것 같아? 길게 잡아도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끝이야. 이 사회에서 늑대인간이 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
너희들의 잘난 우정도 마찬가지야. 지금이야 네 생각이 옳고 거기 반대하는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상식이라는 게 왜 존재한다고 생각해?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생각을 너만 아니라고 목청 높인들 상식이 쉽게 뒤집힐까?
너 같은 순수혈통 부잣집 아들이야 평생 놀고 먹으면서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하고 살아도 그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아. 아무리 철없는 학창시절이라 해도 늑대인간이랑 사귀었다는 게 밝혀지면 마법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확 떨어지게 되어 있어. 내 미래를 송두리째 걸고 루핀이랑 사귀는 도박을 할 순 없어. 아무리 루핀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미친 짓이야!"
시뻘개진 얼굴로 미친듯이 말을 쏟아내고 헐떡이는 펜위크를 보며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미련이 남았군. 리무스가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니까. 안 그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를 뿐 펜위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네 말은 잘 알아들었어. 걱정의 방향이 리무스를 향한 건지, 네 아버지나 네 안위를 향한 건지...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네이프가 더 이상 허튼 짓을 못하도록 확실히 손쓸 필요는 있겠어. 그 편지는 한 번만 오고 안 온 거야?"
펜위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교내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게 단단히 경고해둬야겠군. 네 걱정의 마음은 리무스에게 전달해봤자 상처만 더 줄 테니 내 선에서 받고 끝내도록 하지. 그럼 이만 간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고 돌아서려는 참에 래번클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잠깐만... 루핀은... 어때? 지난밤에... 많이 다쳤어?"
제임스는 안경을 밀어올리며 펜위크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재수없고 짜증나는 자식이지만 뭔가 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름이건 아니건 리무스는 항상 다치고 있어. 늑대인간에 대한 시선이 변하지 않는 한 늘 그렇겠지. 하지만... 기꺼이 함께 고통을 나눌 사람들이 있으니까 넌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게 좋겠다."
"블랙에게 전해줘. 네가 옳았다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연애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말... 리무스가...리무스가 좀 더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래서 차라리 이기적일지라도 진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면 우린 계속 만났을지도 몰라. 나중에 내가 진실을 알았다 해도... 그땐 너무 깊이 빠져서 알고도 헤어지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지......"
제임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교실을 나섰다. 펜위크와의 만남으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듯 세차게 흔들었다.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제 점심 든든히 먹고, 시리우스와 피터와 머리를 맞대고 스네이프 혼내 줄 궁리를 하고, 저녁엔 병동에 있는 리무스 데리러 가야지. 시리우스랑 리무스 잘 되게 릴리랑 작전도 짜고... 연회장으로 향하는 제임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