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가 직전 마지막 외출날, 호그스미드는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호그와트 학생들로 북적였다. 특히 종코는 밀려드는 인파로 입구부터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동물의 분뇨를 이용해 악취를 한층 더 강화했다는 신형 똥폭탄 묶음을 집어든 제임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연말 한정으로 10+10이라고? 이제 유치해서 안 사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그냥 갈 수가 없잖아? 명절 분위기도 살릴 겸 동심으로 돌아가서 오늘 슬리데린 놈들 소굴에서 한 번 터뜨려봐야겠는데......?"
똥폭탄 두 묶음을 집어들려는 제임스의 손을 옆에 있던 리무스가 얼른 눌러 말렸다.
"참아, 프롱스. 릴리에게 점수 따야지. 우리 짓인 거 걸리면 기숙사 점수가 깎일테고 그럼 릴리는 화나서 선물도 안 받아줄거야."
아쉬움에 입맛을 쩍 다시며 제임스는 똥폭탄을 내려놓았다.
"그렇겠지? 그럼 이건 휴가 끝나고 사야겠다. 살만한 건 좀 찾았어?"
허공을 가르며 색색깔의 방귀를 뿜고 날아가는 장난감 용과 선반 위에서 낄낄 소리와 방귀 소리를 번갈아내고 있는 멀린 인형을 힐끗 쳐다본 시리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올해 신상품은 죄다 새로운 구린내를 장착한 것들 뿐이야. 루마니아에서 용 대변을 대량으로 들여오기라도 한 건가?"
형광 핑크색 입술이 '가까이 와봐'라고 속삭이는 카드를 얼굴 가까이 댔다가 구린내 풍기는 트림을 정통으로 맞은 피터가 신음소리를 냈다.
"으어어, 대단해. 여태 맡아본 모든 똥 냄새를 다 합쳐놓은 것 같아."
가게 한가운데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변기 모형을 올려다보며 리무스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가게 전체가 거대한 화장실 느낌이긴 해. 아무래도 선물로 살만한 물건은 없는 것 같은데....."
"프롱스가 에반스에게 저기 있는 '노래하는 공중부양 변기'를 사줄 생각이 아니라면. 변비에 효과적이라고 써 있는데 어때, 살거야?"
시리우스가 음악에 맞춰 위아래로 요동치는 무지개색 변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대답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 제임스는 앞장 서서 종코를 빠져나갔다. 가로등 밑에 모여선 넷은 일단 흩어져서 각자에게 줄 선물을 사기로 했다.
"그럼 두 시간 후에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보자구. 난 릴리 선물 사는 데 도움이 필요하니까 무니랑 같이 갈 거야."
시리우스의 질투 섞인 발길질을 슬쩍 피하며 제임스는 얼른 리무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시리우스와 피터는 허니듀크 쪽으로, 제임스와 리무스는 플러리쉬와 블러트 서점 쪽으로 향했다. 찬 공기에 붉게 달아오른 코끝을 문지르며 리무스가 물었다.
"생각해둔 선물은 있어? 책이라면 릴리 취향을 알긴 하지만 그럼 머글 중고서점이 더 나을텐데......"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혼혈이거나 머글 태생인 마녀가 편견을 딛고 성공하는 그런 내용의 책이 어떨까 싶어. 그냥 성공말고 마법세계를 좀 더...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그런 류의 성공으로. 릴리는 그런 책을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스니벨루스 같은 놈들이 뱉는 온갖 모욕적인 말에도 절대 움츠러들지 않는 릴리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달까. 하여간에 단순히 릴리 얼굴이 예뻐서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멋진 사고방식과 행동을 존경하고 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어. 릴리는 정말 대단한 마녀고 꼭 크게 성공할 거란 말도 하고 싶고... 무슨 소린지 알겠지, 무니?"
"지금 내게 들려준 그 말을 그대로 릴리에게 해주면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 정말 멋져, 프롱스. 최고의 남자친구 감이야."
리무스의 다정한 눈빛과 칭찬에 갑자기 무척 쑥스러워진 제임스는 머리를 벅벅 긁고서 리무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니랑 마주보고 있으면 패드풋이 왜 불에 올라간 오징어 꼴을 하는지 알 것 같네. 근데 최고의 남친 감이란 말을 무니가 나한테 했단 걸 패드풋이 알게 되면......'
원망과 질투로 가득할 시리우스의 눈빛을 떠올리며 제임스는 부르르 떨었다. 제대로 골려 먹고 싶을 때 아니고선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걸음을 재촉한 둘은 금방 서점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긴 했지만 다행히 종코만큼 복잡하진 않았다. 리무스는 제임스를 자서전 코너로 데려갔다.
"여긴 자서전 코너고, 바로 뒷칸이 위인전 코너니까 대성공한 머글 태생 마녀에 대한 책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난 소설 코너에 가서 아까 들은 얘기랑 어울리는 내용의 책이 있나 살펴보고 올게."
"오케이. 고마워, 문샤인."
빙긋 웃고 돌아서는 리무스에게 손키스를 날린 후 제임스는 높다란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책장 하나에 꽂힌 책만 족히 몇 백권은 될 것 같았다. 마녀 이름만 골라서 일일이 뽑아 살펴봤지만 원하는 내용의 책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목이 뻐근해진 제임스는 한걸음 물러나 책장을 전체적으로 쭉 훑어보았다. 수많은 자서전 제목들 사이에는 악명 높은 순혈주의자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섞여 있었다. 그 중 시리우스 블랙 1세라는 금박 글자가 박힌 책이 눈에 들어왔다. 패드풋이 시리우스 블랙 3세이니 원조 시리우스 블랙의 자서전인 셈이었다. 패드풋처럼 잘생겼나 궁금한 마음에 제임스는 그 책을 뽑아들었다. 표지에는 예상대로 엄청난 미남의 초상화가 실려있었다. 미남은 오만한 얼굴로 눈을 부라리다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고귀한 핏줄의 배신자'라고 중얼거렸다. 제임스도 지지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머저리 늙은이'라고 되받아쳤다.
"아무리 책 표지라지만 남의 조상 얼굴에 막말을 퍼붓는 건 무례한 행동 같은데?"
레귤러스 블랙의 우아하지만 차가운 목소리에 이어 나지막한 여자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한 마디 쏘아줄 생각에 제임스는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놀랐다. 익히 알고 있는 귀족적인 얼굴 옆으로 낯선, 하지만 놀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금발에 새파란 눈동자, 도자기 같은 피부. 말 그대로 인형같은 미인의 전형이었다.
"그쪽이랑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만나는군. 형은 다른 곳에 간 모양이지?"
레귤러스를 향해 미심쩍은 눈길을 던지며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야말로 여자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우리 학교 학생은 아닌 것 같고."
여자친구라는 말에 가볍게 키득대는 미인과 달리 레귤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어차피 알게 될 사이니까 소개하지. 이쪽은 제임스 포터. 시리우스 블랙의 절친이지. 여긴 카트린느 로랑. 전에 말한 것처럼 시리우스 블랙의 약혼녀가 될 예정이야."
"뭐?"
당황한 제임스의 눈길이 레귤러스의 얼굴에서 카트린느 로랑의 얼굴로 옮겨 가려다 둘 사이로 보이는 금갈색 머리카락에 멈췄다. 리무스가 책 몇 권을 가슴에 안은 채 창백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